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빙그레 이글스 (문단 편집) === 1991년 === 종신감독 파문 이후 [[김영덕]] 감독과 불화가 있었던 [[강병철]] 수석코치가 [[롯데 자이언츠]] 감독으로 돌아갔고, 주로 수비코치를 맡았던 [[이희수(야구)|이희수]]가 수석코치로 이동했다. 1차 지명으로 [[유승안]]의 은퇴를 대비하여 포수 유망주였던 북일고의 [[양용모]]를 뽑았고, 2차 지명에서는 1라운드 김인권, 2라운드에서는 [[임주택]]을 뽑았다. 한편 강석천의 성장으로 주전에서 다소 밀린 [[김성갑]]은 [[태평양 돌핀스]]로 현금 트레이드로 이적했다. 지난해 홈런왕 [[장종훈]]은 유격수에서 1루수로 포지션 변경을 했고 타격은 더욱 폭발하며 지명타자 골든글러브와 함께 '''타격 5관왕'''에 올랐다.[* 장종훈은 한국프로야구 최다안타(160개), 최다홈런(35개), 최초 100타점(114타점), 첫 100득점(104득점)을 기록하며 한국프로야구사를 다시 써내려갔다. KBO 최초의 3할-30홈런-100타점을 기록한 주인공이 됐다. 장타율도 .640으로 1위였다. 출루율은 .450으로 2위였는데 1위는 이정훈과 타격왕 경쟁에 나섰던 롯데의 [[장효조]]였다.] 또한 21개의 도루를 기록하며 이글스 프랜차이즈 역사상 처음이자 1989년 해태 [[김성한]]에 이어 프로야구 사상 2번째 '''[[20-20 클럽]]'''에 가입했다. 이 때의 활약으로 [[이승엽]]의 등장 전까지 홈런타자는 [[장종훈]]이라는 인식이 박히게 되었다. [[이정훈(1963)|이정훈]]은 타율 .348의 타율로 타격왕과 외야수 골든글러브를 수상했으나 경쟁자였던 롯데 장효조를 방해하기 위해 추악한 고의사구를 내줘 [[김영덕]] 감독은 거센 비판을 받았다.[* 김영덕 감독은 삼성 시절에도 [[이만수]]의 트리플크라운을 위해 타격왕 경쟁을 펼치던 롯데의 [[홍문종(야구)|홍문종]]에게 9연속 고의사구를 내줘 기록을 방해한 바 있다. 또한 한국시리즈 상대를 고르기 위해 고의로 져주면서 빈축을 사기도 했다.] 고원부가 김영덕 감독과의 불화로 출장 기회가 줄어든 가운데 주전 중견수로 출장한 [[이중화]]는 커리어 첫 3할 타율과 20도루로 커리어하이 시즌을 보냈다. 장종훈과 함께 1루수와 지명타자를 오간 [[강정길]]은 커리어 첫 두자리수 홈런(13개)과 2할 8푼대 타율, 5할대 장타율로 커리어하이를 썼다.[* 보통 장종훈보다 뒤에 배치되어 장종훈을 넘었다고 안심할 때 한방을 날렸다.] 당초 장종훈의 백업 유격수였으나 장종훈의 포지션 이동으로 유격수 주전을 차지한 [[황대연]]은 16개의 홈런과 8할대 OPS로 맹활약했다. 주전 2루수 [[전대영]]은 커리어 첫 3할과(.313) 6년 만의 두 자릿수 홈런(11개)으로 활약했다. 주전 3루수와 주전 포수인 [[강석천]]과 [[김상국]]도 각각 WAR 3.23과 3.61을 기록, 좋은 모습을 보였다. 다만 지난해 안타 1위를 기록했던 [[이강돈]]은 타율 .265로 부진한 시즌을 보냈다. [[송진우(야구)|송진우]]는 이해 방위병으로 복무하며 184.1이닝 소화와 함께 11승 10패 11세이브 11완투(완봉 1) 방어율 2.78을 기록했고, 지난해 에이스로 부상한 [[한용덕]]은 방어율 2.23을 기록하고 12번의 완투(완봉 4)와 함께 팀내 승리 1위인 17승을 따내며 에이스의 모습을 유지했다. 지난해까지 주로 계투진에 있던 [[장정순]]은 선발 로테를 돌며 10승 7패와 2점대 방어율(2.95)을 기록했고, 그외엔 잠수함 듀오 한희민-김대중이 8승, 진정필이 4승을 올렸다. 이해 신인이었던 김인권은 선발과 불펜을 오가며 143.1이닝을 소화했고 방어율 2.95에 8승이라는 준수한 성적을 기록했으나 이해 당한 혹사로 인해 이 해를 마지막으로 좋은 모습을 보이지 못하다가 3년 만에 방출당했다. 원년 에이스 [[이상군]]은 혹사 여파로 11점대 방어율에 37.2이닝에 그치며 부진했다. 개막전 상대는 신생팀 [[쌍방울 레이더스]]였다. 송진우를 내세운 빙그레의 손쉬운 승리가 예상되었으나 의외로 쌍방울에 11대0으로 대패하며 창단 첫 승리의 제물이 되고 말았고 위닝시리즈까지 헌납했다. 그리고 지난해 꼴찌팀과 6위팀이던 OB전과 롯데전까지 연속 스윕패를 기록하며 8연패 수모를 겪었고 개막 후 10경기에서 1승9패라는 저조한 성적으로 충격의 최하위로 추락했다. 하지만 다이너마이트 타선과 함께 재정비에 성공하며 4연승과 6연승을 연달아 기록하며 5할승률을 회복, 상위권으로 도약했고 삼성과 함께 2,3위를 다투면서 2위와 8~9경기차로 앞서있었던 해태가 8월 들어 잠시 주춤한 사이 3경기차까지 추격에 성공했다. 하지만 해태가 다시금 연승에 성공하며 승차가 다시 벌어졌고 삼성이 부진하며 72승5무49패 승률 .591, 해태에 7경기 차이의 2위로 플레이오프에 진출했다. [* 서울의 두 팀인 LG와 OB를 상대로 모두 14승씩 거두며 28승1무7패를 거뒀으나 신생팀인 쌍방울과 중하위권에 그친 태평양에 10승8패에 그친 점이 아쉬웠다. 하지만 이해 해태는 빙그레전 8승3무7패의 근소한 우세를 포함해 전구단 상대로 상대전적 우위를 기록했고 순위경쟁팀이던 삼성에는 14승4패로 압도했다.] 1년 전 준플레이오프 상대였던 삼성이 준플레이오프에서 롯데를 꺾으며 1년 만에 재회했다. 플레이오프에서 1,2차전 한용덕의 완봉승과 연장 10회 김상국의 끝내기 희생플라이로 2승을 거두며 유리한 고지를 점했고, 3차전 김성길이 역투한 삼성에 1패를 허용했지만 4차전에서 7회에만 8득점으로 다이너마이트 타선이 폭발하며 10:3 승리를 거둬 3승1패로 2년 만에 한국시리즈에 복귀했다. 이번에도 상대는 지난 두 번의 아픔을 안겼던 해태였다. 빙그레의 다이너마이트 타선은 분명 강력했지만 한희민과 이상군이 하향세에 들어서 한용덕과 송진우가 버티는 모양새라 마운드의 높이는 확실히 해태보다 약했다. 게다가 플레이오프에서도 생각보다 시원한 경기를 펼치지 못했기 때문에 해태의 우세가 예상되었다. 광주에서 열린 한국시리즈 1차전에서 에이스 [[한용덕]]을 [[선동열]]에 붙이지 않기 위해 [[한희민]]을 선발투수로 내보냈는데 선동열에게 4점을 뽑으며 끈질기게 괴롭혔지만 마운드의 약세를 극복하지 못하고 4:9로 졌다. 그리고 정작 에이스 [[한용덕]]을 내보낸 2차전에서는 해태 선발 김정수를 공략해 2점을 뽑고 일찍 강판시켰지만 후속 투수인 이강철을 전혀 공략하지 못했고 3회말 한용덕이 이건열에게 동점 홈런을 허용해 2:2가 된 뒤 5회말 2사에서 한용덕이 이건열에게 백투백 역전 홈런을 맞고 뒤이어 올라온 김인권까지 난타당하며 6실점으로 빅이닝을 허용해 2:11로 완패했다. 홈에서 열린 3차전 2회말 1점으로 1:0으로 이기고 있었고 송진우가 8회 2사까지 퍼펙트를 기록하고 있었지만 퍼펙트-노히트노런-완봉이 차례로 깨진 끝에 결국 장채근에게 역전 2타점 2루타, 윤재호에게 3루타를 허용했고 뒤이어 올라온 장정순도 이건열에게 쐐기 적시타까지 내주며 4:1 역전패로 시리즈 전적 3전 3패가 되었다. 4차전에서는 이틀 쉰 한용덕을 선발등판시켜 7회까지 2:0으로 앞섰고 8회초 3:2 역전 허용 뒤 8회말 강석천의 홈런으로 경기를 3:4로 재역전시켜 드디어 시리즈 1승이라도 챙기는 듯 했으나 구원으로 나온 한희민이 장채근에게 동점 적시타를 허용하고 3루수 실책에 이순철에게 결승타를 내주며 5:4로 역전패했고 결국 시리즈 4전 전패로 안방에서 해태의 우승을 지켜보는 치욕을 겪게 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